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정다루 활동가를 만났어요


정리 : 다슬


1부_7년 만의 신입활동가가 되기까지

<aside> ♥️ 다루 님과는 ‘저연차 인권활동가’ 교육에서 만났는데요. 교육 참여자로 만났을 때와 달리 인터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역에서 운동하는 활동가로서의 포부와 애착이 남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7년 만에 지역의 인권운동 판에 뛰어든 신입 인권활동가는 어떤 고민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평소에는 쉽게 들어볼 수 없는 이야기를 정성스레 나누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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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평화와인권연대 다루 활동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다루 활동가

“저 내일 수능 안봐요”

인문학-인권 동아리 <미쓰리딩>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입한 친구네 학교 동아리예요. “네가 좋아할 것 같아”라는 친구의 말에 덜컥 시작해서 다른 학교를 4년이나 오갔어요. 그 학교 학생들보다 제가 출석률이 더 높았어요. 동아리 활동은 주로 주말에 영화나 책을 한 편씩 보고 같이 얘기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영화나 책을 선정해서 봤고, 영화 중에 <연분홍치마>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도 함께 봤어요. 그 외에도 시민사회운동과 관련된 책을 같이 읽고 토론을 이어갔어요. 약간 ‘빨갱이’ 동아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신입생들한테 <미쓰리딩>은 나쁜 동아리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데요. 그런 동아리를 누구보다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청소년 인권이나 입시 중심의 학교 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담임 교사의 핸드폰 압수와 관련해서도 함께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미쓰리딩>을 담당했던 교사를 지금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함께 고민하는 지역 운동의 동료로 만나고 있고요.

<미쓰리딩>과 같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동시에 여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입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아침부터 학교에서 공부하고 기숙사에서는 11시 50분까지 심야 ‘자율’ 학습을 쉬지 않고 2년을 꼬박했던 거 같아요. 그러고 나니 2학년 말에는 그대로 몸져누웠어요. 그때는 아프다는 생각도 못 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 조퇴해야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갈수록 상태가 나빠졌어요. 시험 직전이었는데 그대로 입원을 하게 됐죠. 고등학교 생활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뭘 하면서 산 건가, 이렇게 내 몸을 깎아 먹으면서 대학에 가면 행복할까?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 보기엔 그냥 무리해서 쓰러졌던 일일 수 있지만, 저에겐 큰 계기였던 거죠. 그때 대학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이미 대학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가족들에겐 1년을 더 기다렸다가 말했어요. 수능 전날에 가서야 “저 내일 수능 안 봐요. 내일 입시거부 선언하러 서울가요.” 좀 막 나가는 타입이었죠. 사실 그땐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아예 수능 응시 신청을 안 했거든요. 그렇게 수능 날에는 <투명가방끈> 기자회견에 참여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부터 이미 다른 친구들이 자소서 작성하고 입시를 열심히 할 때 저는 <아수나로> 활동에 참여했어요. 인문학이란 키워드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시도하는 <미쓰리딩>과 또 다르게 <아수나로>는 내 현재 있는 곳(학교)을 다른 시각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였어요. 게다가 이 모든 시도를 금기시했던 학교에서 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어요. 교실에서 입시를 하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가 돼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어요.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며 행진하는 다루님

학력학벌차별에 반대하며 행진하는 다루님

균형을 찾아가는 시간